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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30대가 되어 전역한 예비역 장교입니다.

김주원
2025.01.22 추천 0 댓글 1

20대 중반에 입대해서 어느덧 30대가 되어 전역한 예비역 장교입니다. 긴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네요. 추억은 하나도 없고 오로지 경험뿐인 듯 합니다. 이제 와서 그간 있었던 일을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저격하고 싶은 마음보다는 그동안의 서러움을 누군가가 알아주고, 군에서 한 사람이라도 알게 되어 무엇 하나라도 변화가 있는 군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적습니다. 이 글에는 두서가 없습니다. 그간 느꼈던 것들,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습니다.

 

초임장교 시절 후방의 해안부대에서 격오지 근무와 5대기를 번갈아가며 생활했지만 정말 열정 가득했습니다. '원래 이런 곳이구나.' 싶으면서도 군인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로 최악의 상급자들이 많았지만 버텼습니다. 그랬던 사람들이 다 영관장교로 진급하는 걸 보니 물론 회의감이 많이 들었지만 말입니다. 연대장님의 관사를 청소하고, 회식하자고 하면 회식 준비하고, 말 한마디에 체육대회를 준비했지만 그 또한 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본인의 평정만 중요하고 부하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는 관심 없던 부서 과장에게 매일같이 욕을 듣고 잔소리를 듣고 주말이면 운전기사처럼 가자는 곳을 자차로 운전해서 이동했지만 버텼습니다. 어느덧 벌써 중대장이 되었습니다. 전방의 격오지에 가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인해 유일한 낙이었던 휴가가 전면 통제되었습니다.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자 용사들부터 시작해서 초급간부들, 초임장교들, 기혼 간부들을 대상으로 휴가를 보내줬습니다. 물론 다녀와서 2주 동안 격리를 해야 했지만 그들이 힘들어하니 보내줬던 것입니다.

 

19개월의 1차 중대장 기간 동안 저는 집에 한 번도 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못 갈 수 있습니다. 중대장은 부대를 지켜야 하니. 그러나 연대장님께 용기 내어 "저도 집에 한 번 가고 싶습니다."라는 말에 "중대장이 자리를 비우는 것은 좀 그렇지 않나?"라는 대답이 너무나도 서운하고,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미혼이라 부양할 가족이 없는 것이지, 저에게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중대장이라고 힘들지 않은 것도 아닐 텐데 말입니다.

 

그래도 책임감을 가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억지로, 정말 억지로 버텼습니다. 19개월 동안 하루도 3시간 이상 잠을 자본 적이 없던 탓에 제정신이 아니라 버텨졌을지도 모릅니다. 현행 작전을 하는 부대이니 다른 거에 신경 쓰지 말고 작전에만 신경 써라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매일같이 오는 상급부대의 점검과 상급부대의 지휘관에게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그런 곳에서 정말 죽어라 버텼습니다. 보람이 없었습니다. 물론 부대에 있는, 전방에 위치한 군인들이 있는 것이 국가의 안전에 보탬이 되겠지만 현행 작전을 한다? 나라를 지킨다? 이런 것들보다는 상급부대에게 지적받지 않기 위해서, 상급 지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용사들을 지켜주는 선생님 같은 역할도 했습니다. 모든 부모님께 전화를 해야 했고, 뉴스에 부대 이야기라도 나오면 부모님들은 저에게 전화를 합니다. 본인이 선택해서 왔지만 저에게 왜 본인 아들을 그 위험한 곳으로 보내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마음의 편지라도 받는 날에는 상급 지휘관에게 잔소리를 듣고, 모든 건의사항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만 신경을 씁니다. MZ 세대를 이해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하며 그저 중간관리자인 중대장에게 모든 것을 다 떠넘깁니다.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더 이상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말 제 자신이 나약해 보이면서도 너무 더럽고 치사해서 내뱉었습니다.

 

매일 잔소리와 한숨 쉬시던 제 지휘관께서 처음으로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번이었지만 감사했습니다. 한 경험 많은 부하 간부가 폭언 욕설로 인해 징계를 받았습니다. 폭언 욕설은 당연히 잘못된 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계급이 높은 타 부대 지휘관 두 분이 비슷한 사유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그분들의 상급 지휘관분께 경고만 받고 끝났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어떤 언행을 했는지, 그분들의 부하들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많은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분명 같은 사람이 모든 사건을 조사했는데 제가 계급이 낮아서, 힘이 없어서 저는 제 부하를 지켜주지 못했나 봅니다.

 

다음 보직으로 이동해 임무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코로나19로 인해 사회는 시끌시끌했고, 부대는 격리와 부실급식 등의 문제로 더 예민했습니다. 안 그래도 보직률 미달인 모든 중대에서 간부가 세 명씩은 도시락을 싸고 있었습니다. 훈련? 그런 거 없었습니다. 그저 민원이 없도록, 상급부대에게 지적받지 않도록, 상급 지휘관에게 잔소리 듣지 않도록 도시락만 수개월을 싸고 있었습니다. 격리시설 순찰을 가보면 격리자 모두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고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 게 바보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많은 용사들은 더 이상 모르는 간부에게는 경례도 하지 않습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마음의 편지에 나옵니다. 그 마음의 편지를 읽은 지휘관은 어떤 일이었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질책하고 주의를 줍니다. 훈련, 훈련 후 정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 체력단련 시간, 개인정비 시간이 더 중요합니다. 훈련 물자 정리를 끝내지 못했지만 상급 지휘관에게 일과 이후에 작업을 시킨다며 개인적으로 연락하여 모든 상황을 중단시킵니다.

 

또 다른 부대에서 마지막의 군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분들이 많지만, 아직도 감히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간부가 있습니다. 높은 호봉으로 고액의 봉급을 받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하급자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 폭언과 욕설을 일삼는 그런 간부가 아직도 있습니다. 모든 책임을 하급자에게 떠넘기는 그런 상급자가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도 저를 믿어주고 함께해 준 지휘관, 동료들 덕분에 무사히 전역했습니다.

 

지금 군대를 사회에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오랜 시간 생활하면서, 변화의 시기를 겪으면서 느낀 바로는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제대로 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들은 행정적이고, 보여주기식입니다. 그래도 억지로 끌려가서 군 생활하는 용사들이 불쌍하여 그들을 응원합니다. 또한 비록 예전만큼 권한도 위엄도 존중도 그 무엇도 없지만 자원하여 입대하는 간부님들을 모두 존경합니다.

 

저는 비록 더 이상 군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존재라 생각되어 전역을 지원하고 전역을 하게 됐지만, 본인의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군인분들에게 앞으로는 더욱더 큰 힘이 실려서 군대가 조금이나마 더 발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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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8월 24일 제보
202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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